이훈 열 아홉, 도윤 스물 셋.
도윤은 더위를 잘 탔다. 조금이라도 열기가 느껴지면 당장에 이마에 땀이 맺혔는데, 그러면 윤은 낮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옷자락을 펄럭였다. 이상하게 에어컨 온도를 낮춰달라던지 하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그저 옷을 펄럭이거나 프린트 된 종이를 부채 삼는 것이 전부였다.
더위를 잘 타는 몸은 무언가 많이 걸치지도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펄럭이는 천조각 사이로 아슬하게 하얀 속살이 비쳤다. 가끔은 얇은 런닝.
도윤은 제가 옷을 펄럭이는 것도, 그러느라 안이 비치는 것도 잘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에 집중하면 그 외의 것에는 허술해졌다. 그러니까, 여름에 도윤은 문제집을 들고있는 한 제 속이 훈에게 보이거나 말거나 더위를 쫓는 것,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당연히 이훈은 그 속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했다.
넓은 방 안에,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것 쯤, 사실 이훈이 여름에 방에 혼자 있을 때면 꼭 담요를 덮었다. 할 수 있으니 당연했다. 굳이 쓸데 없는 땀방울을 흘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도윤이 이훈보다 먼저 방에 도착했을 때, 차마 평소처럼 온도를 낮춰두지 못하고 그저 창문을 열어두는 것으로 대신할 때에, 펄럭이는 옷깃과 그 사이로 희끄레하게 비치는 속살을 보고서, 이훈은 생각을 바꾸었다. 훈은 흔쾌히 굳이 땀 흘리는 것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훈은 체온이 낮았다. 더위도 많이 타지 않았다. 그러니까, 굳이 에어컨을 틀어 실내온도를 낮추지 않아도 이훈이 손해볼 것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힘든 것은 평소같으면 한 소리 할 정도로 지나치게 시선을 주는 것도 모르고 앓는 도윤 뿐이었다. 이훈은 그 사실을 알았다. 알아서, 모르는 척 했다.
"선생님."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화자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덥죠."
잠시 윤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그는 아마 대답을 골몰하다 다시금 수업을 이어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비참함에.."
"선생님."
"..자꾸 말 끊을 거야?"
"수업하기 힘들죠."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긍정의 뜻일 터였다.
"많이 더워요?"
"...조금."
"미안해요. 에어컨이 고장났는데 바빠서 수리를 못 해서. 며칠만 버티면 괜찮을 거예요."
당연히 거짓말.
"선풍기라도 좀 사올까요? 그게 낫나?"
"괜찮아."
대답하는 얼굴은 땀에 젖어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나 입 밖으로 뱉는 말은 거짓 뿐이다.
"진짜요?"
훈은 괜히 거듭 묻는다. 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입 안을 맴돌다 결국 삼켜진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훈은 손을 뻗어 윤의 앞머리를 정리해준다.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윤은 살갗에 닿은 손가락이 서늘해 약간 몸을 움찔인다. 훈은 능청맞게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볼을 감싸 열을 식혀주었다.
평소 같으면 당장 선을 그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윤은 너무 더웠다. 서늘한 손길을 내치긴커녕 열 오른 곳곳에 가져다 대고 식히고 싶었다.
"...훈아."
윤은 눈을 마주했다. 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어쩐지 장난기가 다분했고, 아니 더 정확히는, 위험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윤은 그렇게 느꼈다. 위험하다고. 저 선연한 무표정에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윤은 잠시 눈을 끔뻑였다.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 위로 떨어져 눈꺼풀을 적셨고, 이훈은 손가락을 내어 그것을 닦아주었다.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