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으로, 말투로, 표정으로 예측하는 것은 쉬웠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해왔으니까. 파란만장한 가정사를 지닌 외동이라고 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집에 일하는 사람도 가끔이고, 커다란 저택 안에서 어미와 단둘이 앉아있자면, 자연스럽게 눈치를 봤다.
어미는 대개 정신이 나가 있었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어른스럽기도 했다. 가령 눈치를 보느라 어리광조차 부리지 못하는 어린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토닥여준다거나 하는 것들. 훈은 그 잠시의 온기가 좋아 괜히 더 꽁꽁 속을 숨기는 지도 몰랐다.
하여튼. 그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랐다면 누구나 훈과 비슷하게 컸을 터다. 말 한 마디 꺼내는 것조차 독이었다. 훈은 자라면서 어떻게 해야 자신이 사랑받는지를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말이 없을 것, 시키는 대로 할 것, 상대의 눈치를 살필 것. 그렇지만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행동한다고 하여 정말 훈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것은 아니었다.
자꾸 밤마다 제 침실로 기어들어오는 어미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진작에 눈치챘다. 입 안을 넘실거리는 혀도, 나이가 찬 이후에도 욕실에 들어와 몸을 씻겨주는 손길도, 등 뒤에 꽂히는 시선도, 전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거짓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몰랐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한 마디로 훈이 윤의 속내를 읽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훈은 분명히 확신했다. 윤이 저를 좋아한다고. 모르는 척 손끝이 스칠 때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나, 발개진 귀끝이나, 묘하게 빗겨가는 시선, 호흡. 특히 눈이 마주칠 때면, 그 까만 눈동자 안으로 잔뜩 흐트러지는 감정을 알았다. 윤은 저와 쉬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빗겨가는 시선 끝에는 분명한 동요가 있었다. 그 안에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훈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날 좋아하죠, 하고 말하지 못하는 건 자꾸 뒷걸음질치는 두려움 또한 알고 있어서. 앞날을 예측함에도 멍청하게 저를 피하도록 둘 정도로 어리석지 않음으로.
훈은 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내를 애써 무시하고 눌러담은 채, 사실은 그것이 자꾸만 새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아무 것도 아닌 척 뻔뻔하게 대하는 행동은, 부정할 수 없이 같았다. 그리고 그 때의 자신이 어땠더라. 아마 제가 자각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저가 혼란스러웠던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그 또한 혼란스러울 터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일상에 스밀 수 있게.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듯 모르는 새에 완전히 숨을 조이도록. 그렇게 해서 다시는 제 곁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그런 생각조차 못하도록 붙들어 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훈은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저는 실패를 맛보았고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니.
그러나, 가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때가 있었다. 마른 손을 손에 꽉 잡아두고, 자꾸 발긋하게 물드는 귀끝을 입 안에 담아 잘근거리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훈을 괴롭혔다. 겨우 느긋하게 빤히 바라보는 시선만으로 도망가려 하는 그를 알면서도 그랬다.
그럴 때면 훈은, 참고, 또 참다가, 결국엔 모르는 척 은근히 손을 잡아왔다. 그저 우연찮게 손이 맞닿게 된 듯이. 그렇지만 우연이라기엔 너무 의도적인 것이, 마른 손 마디 사이로 꽉 쥐어오는 손은 속내가 적나라했다. 제 머릿속을 휘감는 감정을 다 토해내듯이 간절하게 잡아오는 손길은 차마 윤도, 아니 사실은 저보다 한참은 센 악력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피하지 못했다. 아마 윤도 모르는 척 하고 싶었을런지도 몰랐다.
가끔은 그렇게 서로 모르는 척, 시선만큼은 다른 곳을 향할 지라도, 꽉 잡아 마주한 손바닥 사이로 스미는 땀방울로, 온기로, 잔뜩 눌러 놓은 마음을 털어놓는 것처럼.
그렇지만 어쨌거나 저보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윤이라서, 화들짝 꿈에서 깬 아이처럼 놀라며 손을 떼는 것은 그가 먼저였다. 그럴 떄마다 다시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훈은 거기서 만족하기로 애써 욕심을 지웠다. 아마 저와 똑같이 두근거림을, 떨리는 목소리를, 이 이상 다가간다면 다시 숨어버릴 그를 알고 있기 때문에.
동요하고 있을 속내를 알아서 훈은 먼저, 기다리는 자의 여유로, 느긋하게 모르는 척 말을 꺼냈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말들. 선생님, 수업 계속 하셔야죠. 이 부분부터. 그리고 능글맞게 아까 미처 이어가지 못한 부분을 짚고. 그러면 윤은 더듬더듬, 다시 수업을 시작하고, 훈은 다시 턱을 괴고 빤히 그 오밀조밀한 입술을 바라보고, 시선을 의식하는 목소리가 잘게 떨리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귀끝이 달아오르고. 그런 하루하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