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훈.
불면에 시달리던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이훈은 보란듯이 집 밖을 나가 새벽을 떠돌았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누구든 품에 안곤 했다. 감정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제 허기진 구석에 무엇이든 채워넣어야했다. 관계는 덧이 없었고 이훈은 그걸 잘 알았다. 누구든 서로 절실한 것처럼 굴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관계였다. 말로만 전해지는 온기는 익숙했다. 지겨웠지만 싫어하진 않았다. 잡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선택할 권리는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는 듯이 저를 보았고 몸 이곳저곳을 주물렀다. 그러면 이훈은 적당히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목덜미에 짧게 키스하며 장단을 맞췄다. 쪼가리 지폐와 빈 껍데기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관계는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면은 새벽 내내 저를 괴롭혔다. 어쩌면 평생일지도 몰랐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당장 눈앞에 나타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이훈은 생각했다. 바란 것 중 이루지 못한 것은 없으나 언제나 예외는 존재했다. 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으니 예외랄 것도 없다. 얄팍한 관계밖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이훈은 매일 밤을 두려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무지는 두려움을 반복해서 주입시켰다. 어떻게 해야 제 옆에 붙여놓을 수 있을지 이훈은 몰랐다. 그저 표현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라도 하면 저를 차마 내치지는 못하겠지, 하는 이기심의 말로였으나 그 외에는 (저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방법이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했다. 사실 윤이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나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그렇지 않은 척 괜히 애닳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진심으로 이훈은 도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제 감정이,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존재가, 그래서 도윤이 중요했다. 아마 그가 저를 받아주지 않았더래도 이훈은 그 앞에서 손목이나마 그어서라도 옆에 붙들어두려 했을 테다. 죄책감은 사람을 붙들어두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